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276장) > 통합큐티

본문 바로가기

2015.01.13[화]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276장)
찬송
성경 본문
마 5:16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찬송묵상
등대 불빛처럼 죄악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자
찬송요약
1절, 등대 빛이 안전한 항해를 돕듯 우리들도 사랑의 등대되어 험한 세상 비추자
2절, 죄의 밤은 깊어만 가고 성난 물결 설렐수록 구원의 빛을 환히 비추자
3절, 어두운 세상에 복음의 등불 높이 밝혀 복음의 생명선에 모두 싣자.
찬송해설
신자들은 그 존재의 본질이 빛이다. 산 위의 동네가 숨길 수 없듯이,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듯이 나의 등불을 밝히 비쳐 죄악의 물결에 빠져 헤매는 영혼들을 건져내야하는 것이 바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사명임을 밝히고 있는 이 찬송은 실제로 등대의 불빛이 꺼지므로 난파를 당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당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미국 펜실베니아 태생의 필립 P. 블리스(P. P. Bliss;1838-1896)가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내가...세상의 빛이로다'(요 9:5)라 하셨고 또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4). 우리 모두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자(마 5:14-16)
찬송프롤로그
1절
하나님의 진리 등대 길이 길이 빛나니 우리들도 등대 되어 주의 사랑 비추세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이면서 선교신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J. C. Hoekendijk이라는 분이 쓴 책 ‘The Church Inside Out’(흩어지는 교회)에 보면 “교회는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위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사도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 교회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교인은 교회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저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세상을 제쳐놓고 좋은 교회를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져 가는데 교회만 좋아지지 않습니다. 교회도 점점 더 나빠져 갑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 노아의 홍수 이후 타락할 때로 타락해졌습니다. 살인과 강도, 절도는 이미 보편화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쟁과 테러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환경파괴로 인해 쓰나미와 같은 해일과 홍수, 가뭄, 하리케인 등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진정한 평화와 참된 안식과 기쁨을 주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3-14)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1절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 등대가 되어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은 크게 세 가지 역할을 합니다.

첫째로,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빛을 비추면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어두움 때문에 빛이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빛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도 빛만 있으면 어두움이 사라지게 되어 환하게 됩니다.

둘째로, 빛은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캄캄한 한 밤중에 배들이 항구에 들어 올 수 있는 것은 등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등대에서 빛으로 길을 안내해 주기 때문에 배가 안전하게 귀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중이라도 비행기들이 안전하게 이륙과 착륙을 할 수 있는 것은 비행장 활주로에 불이 켜져 있기 때문입니다. 활주로에 수 없이 많이 켜져 있는 불빛이 비행기를 안내해 주기 때문에 비행기들이 24시간 안전하게 이착륙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빛은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빛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요즘 레이저 치료 기술이 얼마나 발달을 했는지, 우리 몸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쓰입니다. 시력이 몹시 나쁜 사람들은 레이저 치료를 통하여 회복될 수가 있고, 피부에 난 점도 레이저 치료를 통하여 깨끗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도 황달이 왔을 때에 햇빛을 보면 치료가 되어서 완치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빛은 곰팡이나 각종 세균들의 활동을 억제합니다.

이처럼 빛은 우리들에게 생명입니다. 빛이 없으면 한 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빛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에서 빛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복이요 막중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우리 000교회는 그러한 사명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참된 의미는 교회 건물을 지키고 성도들이 안락하게 모여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함께 친교하며 은혜를 나누는데 최종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인데 우리 교회는 이런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이제라도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더 나아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여 어두움을 밝히며, 생명의 영적세계로 인도하며, 저들의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풀어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 뼈를 깎는 아픔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아름답게 풀어나가서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진리 등대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000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등대지기 달링의 기념비-

영국 북동부 노덤벌랜드 해안은 파도가 거칠어 예로부터 '마의 바다 '라 불려 졌고, 많은 배가 조난당했지만 롱스턴 등대가 세워진 후에는 조난당하는 배가 줄어들었다. 그 등대의 등대지기는 윌리엄 달링이었고, 아내와 큰아들 그리고 그레이스달링이라고 하는 딸, 이렇게 4명이 살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평소 얌전하고 말이 없었지만 여차하면 밤에라도 혼자 등대로 올라갈 정도였고, 보트를 다루는 솜씨도 오빠에게 뒤지지 않았다. 1838년 9월 8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폭풍이 해안을 강타해서 등대도 흔들릴 정도였다. 등대지기는 오늘 밤은 위험하다는 판단아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레이스와 보트를 해변 위로 올렸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고, 물에 빠진 새앙 쥐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그레이스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들어가려다가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서 암초에 걸린 배 한척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뛰어와 "아버지, 큰일 났어요. 난파선이에요." 하며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등대지기는 망원경으로 내다보더니 "그래, 확실하구나. 그렇지만 이 파도에서는..."하고 주저했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부친의 손을 잡아끌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을 살려야 해요. 저와 함께 보트를 저어 가요."라고 외쳤다. 거칠게 날뛰는 파도를 한참이나 보고 있던 윌리엄은 "좋아, 보트를 내자."하고 결심한 후 나뭇잎처럼 흔들거리는 보트에 앉아 산처럼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갔다. 난파선은 이미 반 이상이나 가라앉아 있었고 여자 한 명을 포함한 9명이 암초 위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등대지기와 딸이 도착하자 조난자들은 매우 좋아했다. 세 번 왕복한 끝에 9명 조난자 모두를 구출할 수 있었다. 폭풍 때문에 구조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용감한 등대지기의 딸 그레이스 달링의 이야기는 영국 전역에 전해 졌다. 지금도 노덤벌랜드 해안에는 그레이스의 공적을 찬양하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참고: 인터넷 목회정보클럽>

여러분에게 질문한가지를 던지고 싶습니다. 교회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느냐?하는 질문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저에게는 대단한 고민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생각하면 교인들을 위하여 있는 것 갔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세상을 위하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간 고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회가 교인들을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세상을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세요?...
관련 찬송
새벽부터 우리 496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499장
땅 끝까지 복음을 506장
오늘의 기도
많은 부분 성경의 가치가 세상의 가치에 대하여 변증법으로 묘사 되고 있는 것처럼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만만치 않게 보는 사람은 “바보처럼, 기꺼이 손해 보며,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의 어둠이 감당할 수 없는 빛이 되게 하소서.

본문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찬양큐티란?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www.everprais.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