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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화]
63장 주가 세상을 다스리니
찬송
성경 본문
시 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찬송묵상
주의 놀라운 창조솜씨 만백성이 경탄하네
찬송요약
1절 흉악한 마귀 다 멸망시키시고 온 세상 다스리시니 그의 나라와 영광이 가득하도다.
2절 주의 놀라운 창조솜씨에 저 하늘의 별들과 만 백성이 경탄하며 큰 영광돌리네
3절 주가 세상 피조물을 인간에게 다 맡기고 큰 권위 주셨으니 주님의 영광 찬란하다
찬송해설
“권능의 손으로 저 하늘의 별들과 온 땅위에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신 주님께 찬양을 드리오니 큰 영광 받으소서”라는 이 찬양은 매우 단조롭고 부르기 쉬운 곡조로 되어 있지만 작시․작곡자 모두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기록으로는 1984년 러시아에서 불리던 노래를 게바하트(E.Gebhardt)가 작곡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의 곡과 첫 출발이 비슷하다.
찬송프롤로그
2절 주가 권능의 손으로써 이 세상을 창조하니 그의 놀라운 창조솜씨 만백성이 경탄하네
저 하늘의 별들도 모두 주 영광을 나타내어 늘 돌보아 주시는 주께 큰 영광을 돌립니다

찬송가 2절은 “주의 놀라운 창조솜씨에 저 하늘의 별들과 만 백성이 경탄하며 큰 영광돌리네”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 31절에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긍정과 기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창조물을 보시고 실망하시고 후회하며 벌을 내리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러한 기쁨과 진노 사이에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그 죄 값은 아담에게만 머물지 않고 땅 전체에 미칩니다. 아무리 애써 땅을 갈아도 땅은 더 이상 좋은 소출을 내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기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사람 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모든 것들과 새들까지도 멸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인간의 범죄는 모든 피조물에 미칩니다.

더욱이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가 오히려 인간에게 커다란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 한파와 폭설로 인하여 몸살을 알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는 쓰나미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더니 이번에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중간에 위치한 ‘아이티’라는 나라는 대 지진으로 인하여 10만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고 국민들이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도 정부가 힘이 없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무정부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녹아내려가고 있으며, 각종 자연 파괴로 인한 자연재앙이 곳곳에서 가속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수억 년을 이어온 생명의 질서가 불과 최근 한 200년 동안의 인간에 의해 급속히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전체 생명계에 독소 역할을 하는 암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러한 자연파괴가 서구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진행되었다는 신학적 반성이 있습니다. 흔히 그 근거로 오해 되어온 "이 땅을 정복하라. 다스려라"(창 1:28)는 몇몇 구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신학적 구조 자체가 문제입니다.

서구적 신학 사고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이원론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영혼과 육체, 죄와 구원, 창조물과 피조물을 이원적으로 구분해 놓고 서로의 차별을 극대화하고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인간의 마음대로 착취할 신학적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자로 한 쪽 끝에 놓고 세상을 그의 피조물로서 다른 쪽 끝에 놓는다면 자연을 대상화하고 무한히 착취할 신학적 근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든 사물을 가치와 비가치, 의미와 무의미, 선과 악, 하나님의 뜻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대립하여 몰아세우면서, 어느새 죄인 아니면 의인으로 사람마저 이원화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학교도 일류학교, 이류학교가 있는가하면 학생도 성적에 따라 우등생, 모범생, 문제아, 저능아로 분류하며, 생활소득에 따라, 고소득층, 저소득층을 나누는 등 만사를 이원론의 잣대로 판가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시청률 21%의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아마존의 눈물’을 보니 종교를 앞세운 선교사에 의하여 문명의 이기를 좇아 고유문화와 풍습을 버리고 해변가로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금 원시림으로 돌아와 토착화 문화를 통해 행복과 만족감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들의 진정한 행복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자연의 순리와 법도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자연의 아름다움도 유지되고 인간의 참 행복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호관계를 초월해서 유아독존(唯我獨尊)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사랑과 정의의 인간적 감정을 초월한 무감각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거나 절대자유, 전능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는 질투하는 하나님이고 속이 타서 애타하는 하나님이고 사랑하며 눈물을 흘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마술을 휘두르듯 척척 해결하는 해결사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고통 받고, 간구하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다 못해 아예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경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상대를 필요로 하십니다. 고독을 느낄 수 있고 고독 때문에 괴로워하는 하나님은 관계를 맺기 위하여 창조하십니다. 피조 된 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고립된 체계가 아닙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한번 행사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혼자 완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창 2:18)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모든 자연과 더불어 인간들이 화합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몰트만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에서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성육신적, 삼위일체론 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성육신적이라 함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피조물 안에 육화시켜서 자신을 스스로 물질화, 자연화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피조물 안에 육화, 물질화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자신이 다른 피조물과 대화와 사귐을 갖기 위해서 자신을 자연세계 안에 제한하신 사건입니다.

이 세상은 단순한 하나님의 창조의 대상물이 아닙니다. 시편 19편은 이 세상이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섭리와 그분의 의도가 관철되는 장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피조물 안에 내재하심을 증거 합니다. 시 33편 6절은 "그의 입김으로 별들이 돋아나고, 만물이 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주가 권능의 손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의 모습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찬송가 3절)

세상 안에서 하나님-사람-자연은 서로가 공동으로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맑은 물, 하늘, 숲, 지렁이를 욕심 많은 인간보다 더 사랑하실지 모릅니다. 인간은 흙에서 낳고 흙에서 나오는 푸성귀를 먹고살며 인간의 몸은 또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은 거대한 생명체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먹는 푸성귀 한 조각, 쌀 한 톨에도 이러한 조화를 설법하는 하나님의 신비가 서려있습니다. 한 톨의 쌀은 자연의 햇빛, 바람, 물, 흙이 어울러져 생긴 우주의 아름답고 신비한 조화이고 여기에 사람의 정신과 육체적인 모든 일이 다 협동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나, 밥, 우주를 하나로 이어주며 인간의 몸은 우주와 대자연과 하나로 통해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인간이 자기 욕심을 위해서 이세상의 생명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서 내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지구를 물려주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지고 사람을 사람답게,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기독교 문화가 이루어져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세계와 영광이 영원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송 예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태평양 밑바닥으로부터 10 킬로미터나 높이 솟아있고 120 킬로미터나 넓게 퍼져있는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화산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화산입니다. 그러나 화성 표면에 있는 올림퍼스 몬스 라는 이름의 화산이 태양계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화산입니다. 이 화산은 에베레스트 산보다 3배나 높고, 마우나로아 화산보다 100배나 더 큽니다. 얼마나 큰지 하와이군도 전체를 다 담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아주 오래전 다윗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창조주가 지으신 우주의 신비로움에 경외감을 나타내며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별들과 하늘만이 고대 시편기자의 경외감을 자아낸 것은 아닙니다. 지진과 화산 또한 창조주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시편 104편은 "저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신즉 연기가 발하도다" (32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양계에 대한 우주탐사기의 탐험이 계속되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우주의 신비로움이 계속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발견되든지 모두가 다 동일한 창조주의 작품입니다 (창 1:1). 오래전 한 목동이 하늘을 우러러봤을 때 우주의 신비로움이 그 소년을 감동시켰듯이, 그 신비로움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들도록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감동시킬 것입니다 (시 8:3-5).

<참고: 인터넷목회자정보클럽/ 5분 묵상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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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에게 ‘다스리고 정복하라, 땅에 충만 하라’ 하셨건만 죄악에 빠진 저희들이 ‘나르시즘’에 취하여 모든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뿐 아니라 날마다 죄악의 수위를 더해가고 있는 저희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마지막 추수의 때를 기다리며 나 자신의 영성을 회복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도록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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