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495장)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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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4[토]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495장)
찬송
성경 본문
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찬송묵상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요약
1절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하도다.
2절 주님을 알기 전 멀리 뵈던 하늘나라가 내 맘속에 이뤄지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3절 높은 산 거친 들 초막이라 할지라도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궁궐과 같도다.
찬송해설
주님이 계시는 곳은 어디나 천국이요,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지옥인데, 주님을 모시고 늘 동행하고 있으니 그 어디나 천국이라는 찬송은 버틀러(C.F.Butler)가 1898년에 작사하고 미국 뉴욕 주 태생의 교회 음악가로 10여권의 찬송가를 편찬하고 감리교 감독파교회 찬송가위원으로 활동했던 제임스 밀톤 블랙(J.M.Black;1856~1938)이 같은 해에 곡을 붙였다.
찬송프롤로그
1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1절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하도다.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아 앉으셨을 때에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玉盒)을 가지고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귀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정작 예수님을 초청한 시몬은 마음속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가 맞는다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줄을 알았으리라”(39절)며 반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의 생각까지 분명하게 아시는 주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시몬을 향하여 탕감 받은 빚쟁이를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두 사람이 빚을 지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그런데 이 빚 주는 사람이 두 사람의 돈을 모두다 탕감해주었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저를 사랑하겠느냐?”(41-42절)고 물었습니다. 시몬은 듣고 대답하기를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을 받은 자니이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43절)하시면서 “너는 나를 초청해놓고도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발을 씻어주었느니라 너는 내게 입 맞추지도 아니하였으나 이 여인은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44-46절)고 말씀하시면서 “여인이 이처럼 사랑함이 많은 것은 더 많은 죄 사함의 은혜와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인아!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48절)고 축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탕감 받은 자의 비유와 더불어 바리새인인 시몬과 죄인인 여자의 두 행동을 갈라놓는 시금석이 ‘사함을 받은 사랑함의 크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두 사람이 느끼는 행복과 은혜의 체감도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해놓고도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며”(44절) “예수님께 입 맞추지 아니했으며”(45절) “예수님의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다”(46절)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해 드린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저가 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 것일까요? 복음의 능력과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서도 교회의 목사님을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대접하면 자신의 명예와 신분이 더 높임을 받을 수 있다는 속셈에 많은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접대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던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했다는 신분과시를 위해 예수님을 초청했던 것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시몬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구원의 감사와 죄 사함의 기쁨은 없고 오직 집사, 권사, 장로가 되었다는 명예욕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서 무슨 헌신과 희생과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반면 죄인인 한 여자는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37-38절) 왜 그렇게 한 것 입니까? 1절의 가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화된 기쁨과 감격”을 감출 수가 없어서 울며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눈물은 자신의 죄를 회개한 것입니다. 그 발에 입 맞춘 것은 최대의 경의와 경배를 예수님께 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은 것은 헌신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기가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것입니다. 이런 귀한 헌신과 결단의 감격이 우리에게도 흥분된 감격으로 다가오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을 향하여 48절에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향유 붓고, 눈물 흘리고, 머리털로 발 씻었기 때문에 구원 받고 죄 사함 받은 것이 아니라, 몇 년 교회 다녀서 집사, 권사, 장로가 되므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과 헌신과 믿음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했고 사죄의 선언을 받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속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좇아내고 병자들을 고친 것을 자랑하며 흥분해있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말씀하시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은혜와 기쁨은 내가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과 동행하며 하늘나라의 감격과 기쁨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을 향하여 50절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더 이상 너는 죄인이 아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피해 다니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을 찬양하며 평안함속에 자유함속에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을 향해서도 “내가 네 죄를 사했다 너도 구원함을 받았다. 내가 너에게 평안을 준다. 평안히 가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이런 구원의 감격과 은혜와 평안이 여러분 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멘델스존의 연주-

옛날에는, 자전거에 어린이용 의자를 얹은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잘 안 보입디다. 휴일이면 이 자전거에 아빠들이 어린이를 앞 의자에 태우고 가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 의자에 앉은 어린이도 핸들에 손을 얹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운전은 아빠가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린이가 뒤의 아빠를 무시하고 자기가 운전을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고단하겠습니까. 얼마나 서투르겠습니다. 얼마나 사고의 위험이 높겠습니까? 초기 낭만파를 대표하는 유대계 독일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1809-1847)이 있습니다. 이 분이 유럽에서 최상의 오르간을 가진 예배당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동안 오르간의 연주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오르간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오르간니스트에게 자기가 한번 연주할 수 있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니까요. 어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오르간을 타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그러나 이 대 음악가는 끈질기게 청하여 마침내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멘델스존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달리고 발은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예배당 안은 신비한 멜로디로 가득 찼습니다. 감격의 눈물을 눈에 띠우면서 방금 전의 그 오르간니스트는 멘델스존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음악의 거장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멘델스존입니다." 그때 그 오르간니스트는 다만 놀랄 뿐이었습니다. "멘델스존! 멘델스존에게 이 오르간을 타지 못하게 하려 하다니... 아, 이 늙은 나는 얼마나 멍청이인가?"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건반에 손을 얹고 최상의 연주를 해 줄 그 분! 바로 우리 주님이 옆에 계시는데도, 우리는 자리를 내 놓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내 인생에 얼마나 멋진 하모니을 이끌어 낼지 모르는데, 나는 그분의 손을 뿌리치며 살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멋진 음악이 울려 퍼지기를 원한다면 주님에게 나의 인생의 반주를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내 인생을 맡기면, 지금까지 내고 있던 귀에 거슬린 음악 대신, 지금까지는 꿈 꾼 일도 없는 굉장한 멜로디를 연주해 줄 것입니다. 주님의 상하신 그 보혈의 손이 여러분의 메마르고 거친 또 상처 난 심령의 건반 위를 멋지게 달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속에 “할렐루야 찬양하세” 노래가 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참고; 인터넷목회정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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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복록이 소유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소유를 갈망하는 것은 아는 것은 결코 믿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안에 모든 것이 은혜로 준비된 복록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을 앞당겨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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