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장 구주여 광풍이 불어 (419장)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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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토]
371장 구주여 광풍이 불어 (419장)
찬송
성경 본문
마 8:24-26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
찬송묵상
사납게 뛰노는 파도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
찬송요약
1절, 큰 물결이 일어나 피할 곳 모른 채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 나
2절, 세상의 풍파가 나를 삼키려 할 때에 날 붙들어 구원해 주소서
3절, 사나운 풍랑과 물결이 그치고 잔잔하듯이 내 마음이 편하다
찬송해설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의 침례교인으로 여류 찬송 작시자인 메리 안나 베이커(M.A.

Baker;1831~1922) 여사가 작곡자 팔머로부터 ‘풍랑을 잔잔케 하신 주’란 주일학교 공과에 맞는 작사를 부탁받아 1874년 작사하였다. 찬송 곡은 호레이쇼 리치몬드 팔머(H.R.Palmer;1834~1907)박사가 만들었다. 팔머 박사는 미국 뉴욕 주 숴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친과 숙모한테서 음악을 배운 후 뉴욕, 베를린, 프로렌스 등에서 공부했다. 1857년 뉴욕 라쉬포드 아카데미의 음악부 주임교수가 되었고, 그곳 침례교회의 오르간연주자와 성가대 지휘자로 있었다. 그리고 뉴욕 주 숴터쿠아 여름 음악학교 학장으로도 일했다.
찬송프롤로그
1절 구주여 광풍이 불어 큰 물결이 일어나 온 하늘이 어둠에 싸여 피할 곳을 모르니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돌아 봅니까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 때 주무시려 합니까
큰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사납게 뛰노는 파도나 저 흉악한 마귀나
아무것도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 엎어 놀 능력이 없도다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해 잔잔해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하라

1절, 큰 물결이 일어나 피할 곳 모른 채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 나

본문 마태복음 8장 24-26절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났던 제자들이 폭풍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요, “고기 잡으러 가자”라고 말하는 어떤 형제의 제안을 따라 배낚시를 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게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항해하고 있는데 풍랑이 즉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배에 계실 때 풍랑이 엄습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았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거기 배 안에 계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있을 때 징계를 받는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가까이 하며 교제를 하고 있는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해도 위기와 고통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잘 믿고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들에게도 이런 풍랑이 일도록 허락하시느냐?”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풍랑을 막아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일반적인 성도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풍랑을 막아주지 않고 허락하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풍랑을 만난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제자들은 풍랑을 맞아 일찍이 주님을 깨웠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배의 줄을 묶느라고 바빴고, 돛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항해하는 데만 정신이 팔여 있었습니다. 정작 그들은 모든 일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찾아 그들의 위험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말로 하면,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봅니다. 기도를 뒷전입니다. 마음으로 할 뿐 전심으로 매어달려 기도하지 않습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우는 일에 우리가 게으르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체하다가 배가 파선 될 위기 상황이 되어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넘어질 마지막 때가 되어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제자들 역시 뒤 늦게 주님을 찾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 25절에서 제자들은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4장 38절에서 제자들은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원망했습니다. 찬송가 1절에서는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돌아봅니까?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 때 주무시려 합니까?”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구호요청의 뒷면에 숨은 핵심감정은 주님에 대한 원망, 불신이 마음이 가득 묻어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은 주님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와 영적태도입니다. 평안하고 좋을 때는 주님께 감사기도 도 잘하지만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주님이 어디계시냐? 고 원망하며 상황과 현실을 좇아 그 믿음이 들쑥날쑥 하면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따라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충만케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좀 더 담대하고 신실하고 성숙해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주인공들로 만들고자 험한 풍파와 같은 고난과 역경을 보내어 우리를 훈련하십니다(사 55:8-9)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내 믿음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주님께 고백하고 성령의 능력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도와주시고 세워주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위기는 망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고, 망하지 말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이 위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 풍 랑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삶의 명제가 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명제는 예수그리스도로 충족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벳세다 들녘의 무리를 보내는 동안 제자들을 배에 태워 앞서 건너가게 하신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소원하신다. 추앙받고 영광 받는 일은 누구나 원하지만 거기에는 내일의 희망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야 한다. 틀에 박힌 생활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성공을 원한다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데 있다. 바다에 풍랑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이 풍랑이 결코 공포의 대상일 수 없는 것은 풍랑 속에 예수가 찾아와 계시기 때문이다.

<참고: 인터넷목회자 정보클럽/길자연 목사(왕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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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은 더 영롱하게 빛나듯이 인생의 고난이 깊을수록 오직 주님만 구원자 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뜻 없는 고난은 없다고 합니다. 고난 뒤에 숨은 미션을 깨닫고 순종함을 통하여 얻게 될 성숙과 복록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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