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기도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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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3[금]
157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기도
찬송
성경 본문
마 27:46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찬송묵상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 기도하신 예수님
찬송요약
1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 기도하신 예수님 갈보리 십자가 지셨네.
2절)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 하나님 뜻 이루려고 고난의 길 가셨네
3절) 내 가는 길 험하여도 주님 가신 골고다 길 나도 걷게 하소서
찬송해설
월간 크리스천 ‘창조문예’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김광영(1944~    )장로가 1989년 지병의 재발로 걷지도 못하는 고통중 주님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며 위로를 받고 작사하였다. 숭실대 출판부장, 광운대, 상지대, 숭의여대 외래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곡은 한국가곡창작학회회장, 총회신학교 종교음악과 교수, 인천임마누엘교회 지휘자를 역임한 김정양(1941~2002)교수가 1999년 작곡하였다.
찬송프롤로그
1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기도 하시고
갈보리 산 십자가를 죄인 대신 지셨네
엘리 엘리 부르시며 고통당한 예수여
우리 위해 괴로운 짐 주님 홀로 지셨네

1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 기도하신 예수님 갈보리 십자가 지셨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잡히시기 전 날 밤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고 제자들에게 이제 예수님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듣고서는 당장에 나서서 말하기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그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베드로의 다짐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나 제자들이 지금은 그렇게 다짐을 하지만 결국은 주님을 부인하고 모두 다 도망가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데리고 다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의 '겟세마네'란 아람어로 '기름 짜는 기계' 라는 뜻으로서 아마도 예수님께서 몸에서 기름을 짜내듯, 땀방울이 피 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셨다는 것에서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선택하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의 마음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은 그렇게 잔인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에 중대한 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시국사범들에 대해서만은 아주 끔찍한 형벌로 다스렸는데 그 끔찍한 형벌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형벌이 바로 십자가 형벌이었습니다. 이 형벌은 죄수의 손과 발목에 못을 쳐서 나무 십자가에 매달아 놓는 간단한 형벌인데 실제로 죄수가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그 달린 사람의 몸무게 때문에 뼈마디가 끊어져 나가는 그런 고통을 느끼게 되고 심장은 점 점 압박을 받으면서 호흡이 힘들어 지고, 계속해서 피를 흘리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아주 끔찍한 형벌입니다. 대체로 이렇게 사람들이 십자가 달려서 죽을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그 고통이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주님께서도 이런 십자가의 형벌과 고통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아프고 힘든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시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아픔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가 단절되었듯이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그 몸에 입는 순간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과 어두움의 고통을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마 27:45)의 말씀이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역시도 그 침묵의 정적을 깨뜨리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46절)고 외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을 보면 이 사건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귓가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부르짖는 주님의 기도의 음성과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며 고통당하신 예수님”(찬송가 1절)의 부르짖음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이 순간 바로 이 부르짖음은,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인내심도 어떤 자제력도 막을 수가 없는 최고의 슬픔이었으며, 또한 최고의 고통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버림받는 고통! 그것이 바로 최고의 슬픔이요 고통이었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아파하며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위해 괴로운 짐 홀로 지셨습니다.”(찬송가 1절) 주님이 우리를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고통하며 기도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당장에라도 주님의 천사들을 불러서 이 땅을 심판하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드신 사람들에게 자신이 잡혀 죽으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대신 죽지 않으면 우리가 멸망해야 되니까 주님은 이 길을 중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강권하시는 그 사랑이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가도록 힘주셨습니다.
찬송 예화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쳐다보며 가슴을 쥐어짜고 울고 있는 광경을 그려보며, 한 무명의 미국 흑인 노예가 흑인 영가를 지은 것이 우리말 찬송가에도 ‘거기 너 있었는가?’ 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나는 내가 세상 욕심으로 비계가 찌고 주님에의 애정이 식어질 때면, 이 찬송가의 가사를 열 번쯤 읽어보곤 한다. 인류의 전수 전량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형벌 받고 대신 저주받고 대신 죽는 그 현장- 하나님이신 그가 하나님 없는 영점하의 존재가 되는 그 저주의 십자가-우리는 모두 거기 있었고, 누구도 예수님 처형의 공범자 아닌 사람이 없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스펄전 목사님은 임종 시에 말하기를 “이제 나는 신학을 네 마디로 줄일 수 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jesus died for me), 또 세 마디로 줄인다면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jesus loves me),또 한 마디로 줄인다면 “십자가”(cross)라고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참고: 김준곤 목사 컬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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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않게 하시고 예비 된 하늘나라 바라보며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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