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장 서쪽 하늘 붉은 노을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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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4[토]
158장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찬송
성경 본문
눅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찬송묵상
눈물과 피 없이 못가는 영문 밖의 좁은 길이 십자가의 길
찬송요약
1절 서쪽하늘 붉은 노을, 연약하신 두 어깨, 머리에 쓴 가시관, 몸에 걸친 붉은 옷
2절 걸어가는 발자국, 땀과 눈물 붉은 피, 간악한 유대인, 포악한 로마병정 갖은 곤욕
3절 눈물과 피 없이 못가는 영문 밖의 좁은 길, 영생의 복 얻기 위해 이 길 걸어가세
4절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 길을 보여주니 제 십자가 바로지고 나도 가게 하옵소서.
찬송해설
복음성가 ‘영문 밖의 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찬양으로  경남 창원, 오산학교, 연희전문학교 상

과 중퇴, 장로회신학교 졸업, 전 평양 산정현교회, 마산 문창교회, 부산 초량교회를 담임하며 독립운동가로 일제종교탄압에 순교,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주기철(朱基徹;1897~1944)목사가 작사하였다. 곡은 목원대학교 음악대학,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원, 사우스침례신학대학교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한국기독교 교회음악학회 회원, 한국 작곡가 협회 회원, 미국 찬송가협회 회원 김남수(金南洙;1953~      )교수가 2005년 작곡하였다.
찬송프롤로그
1절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언덕 위에 비치누나
연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 쓴 가시관과 몸에 걸친 붉은 옷에
피 흘리며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1절, 서쪽하늘 붉은 노을, 연약하신 두 어깨, 머리에 쓴 가시관, 몸에 걸친 붉은 옷

해지는 서쪽 하늘, 특별히 언덕위에 걸쳐진 붉은 노을은 너무나도 멋진 광경입니다. 그러나 작사자 주기철 목사는 이런 세상의 멋진 노을의 붉은 배경의 화폭을 바라볼 때 연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신 예수님을 생각했으며 더 나아가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붉은 홍포를 거치신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유와 영적기쁨과 생명을 살리는 길은 오직 영문 밖에서 이루어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가사에 영문 밖의 길을 업로드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3장 13절에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욕을 지고 예루살렘 영문 밖으로 내쳐지고 버려져서 십자가위에 달리심안에 포함된 영광스런 축복의 자리에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가자는 초청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영문 밖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그 위에서 자기 피를 흘리셨고, 그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심으로(히 9:12) 그의 하늘에 속한 거룩한 제사장 직분의(히 7:26) 하늘에 속한 사역에 의하여(히 8:2, 6) 거룩케 하시는 역사를 행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거룩케 하시는 피의 보혈의 능력으로 인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분께 참여함으로 우리는 거룩케 하는 십자가의 길에 의해 영문 밖으로 나가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문 안과 영문 밖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영문 안은 인간의 소유와 욕구와 필요가 집대성되어서 문화가 되고 건축이 되고 구조물이 된 도성입니다. 그 안에는 종교가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문화화 되어있습니다. 종교는 무릇 자기의 소원과 목적과 필요에 의해 신을 찾고 도움을 구하는 욕심의 구체화입니다. 바알의 이름을 부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든지 부처의 이름을 부르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소원이 응답받고, 필요가 충족되고 자기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그 앞에 엎드리고, 헌신을 드리고, 마음을 드려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단을 만들고, 화려한 건물을 만들어 놓습니다. 높고 화려한 건축물과, 자기의 의복과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썩어질 영광으로 옷 입고 거룩한 체 폼을 잡는 종교인들에 의하여 예수님은 영문 안에서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는 영문 밖으로 내쳐져야 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는 능욕을 지고 거기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문 안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영생이 없습니다. 편협한 종교의식과 타협만이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1938년 9월 1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깜짝 놀라 몇 번이고 자신의 귀를 만져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주기철 목사는 산정현 교회 강단에서 말씀을 통해 총회 신사참배 결의에 대해서 단호하게 “이 일은 우상승배입니다. 우리 산정현교회 교인들은 철저하게 반대를 해야 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곧 영문 안에는 구원이 없으니 십자가의 바른 진리를 위해 영문 밖으로 나와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을 통해 구원의 참된 역사를 이루어 가자는 외침이었습니다.

이렇든 영문 안은 율법과 제도와 의문에 쌓인 모든 것들이 짜이고 짜여서 자유로운 생명을 깔아뭉개고 짓밟는 모든 것들입니다.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고 지식의 탑들로 쌓아 올려진 도성, 그 지식으로 자랑을 삼고 판단하고 정죄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이다"라고 말하는 영문 안 여기서 우리는 나와야 합니다.

교회의 타락을 부채질하는 종교적인 권위와 자랑과 영광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수십만, 수백만 명을 모았다고 자랑하는 숫자적 노름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썩어 없어질 영광을 자랑하는 바벨탑의 건물들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거기에는 능욕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채찍과 가시면류관이 없습니다. 옷 벗김과 붉은 홍포의 수치가 없습니다. 모두가 배부른 채 세상적 권위와 자랑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거기는 생명이 없습니다. 거기서는 나 버림의 십자가 생명의 줄기세포가 배아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문 밖으로 능욕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문 밖 십자가에 달려 계십니다. 우리도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안락한 기독교는 자멸하고 맙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 이 모든 것들은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6)

죽고 부활한 영문 밖 예수님을 바로 만나야 영원한 지성소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친히 능욕을 받으며 영문 밖으로 나가 우리를 살게 하는 양식이 되었으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는 자들입니다.
나의 영적 스승인 엄두섭 목사님은 요한계시록 18장 4절의 말씀을 배경으로 “내 백성아 거기(세상권력, 음란, 정욕, 권위, 정치, 여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치 말고 그(녀)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며 세상에서 빠져나오라고 외쳤습니다. 영문 밖으로 나를 이끄셔서 십자가 안에서 내 운명을 보게 하시고 그 분 안에 나를 포함시켜서 그분이 누리는 생명의 세계를 맛보고 누리게 하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시다.
찬송 예화
갈보리 언덕에서 만난 예수님

갈보리 언덕에 서 보라.
십자가의 나뭇결을 손가락으로 매만져보고
못 끝으로 당신의 손목을 지긋이 눌러보라.
그분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라.
아, 주님! 이 모든 일이 나를 위해 하신 일입니까?
그때 그분의 속삭임이 들려올 것이다.
“그래, 너를 위해 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 일이다.”

-맥스 루케이도의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중에서-

갈보리 언덕 위에서 만난 예수님은 가장 낮고 고독한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신음하시며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
이제야 비로소 주님의 고통을, 그 가운데 숨겨진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수많은 사람을 위한 죽음이 아닌 죄인 된 나를 위한 죽음.
십자가의 은혜로 내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주님께 그 사랑을 돌리길 원합니다.

<참고: CTS 새벽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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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이 내 안에서 제한되지 않게 하시고 범사에 주님의 통치하심과 중보하시는 은혜로 내게 주신 사명 감당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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