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장 내 주님은 살아계셔 (16장)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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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6[월]
170장 내 주님은 살아계셔 (16장)
찬송
성경 본문
욥 19:25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찬송묵상
내 구주가 살아서 날 지켜주심을 아노라
찬송요약
1절 내 주님은 살아계셔 날 지켜주시니 나 자유 얻었네
2절 나의 구원과 소망 되신 주 항상 나와 함께 하시네
3절 나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주 나를 부르니 주 뜻 이루리
4절 굳센 믿음가지고 주 뜻 따르면 재림 때 날 영접하시리
찬송해설
욥 19:25 말씀을 배경으로 넘어져서 일어설 힘도 없을 때 구원과 소망이 되사 날 영접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감리교를 창설한 존 웨슬리의 동생으로 6500여 곡의 찬송시를 작시한 찰스 웨슬리(C.Wesley;1707~1788)목사 작사하였다. 곡은 죠지 프레드릭 헨델(G.F.Handel;1685~1759)의 <메시아> 제3부 소프라노 아리아에 수록된 ‘나는 내 구주가 살아계심을 아노라’에서 찾을 수 있다.
찬송프롤로그
1절 내 주님은 살아계셔 날 지켜주시니
그 큰 사랑 인하여서 나 자유 얻었네

1절 내 주님은 살아계셔 날 지켜주시니 나 자유 얻었네

부활은 마치 겨울이 지나 봄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꽁꽁 언 뿌리에 새싹이 솟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겨울 공기와 같이 차갑고 생명력이 없던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봄이 자연에 안겨주는 것 같은 구원과 소망의 새 생명을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봄은 엄동설한을 견디고 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우박이 떨어져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봄이 오면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로마 병정의 채찍과 군중들의 조롱과 돌무덤의 인봉, 무덤을 지키는 군사들의 창칼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과 새 소망의 용트림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참 생명을 주시고자 돌무덤의 문을 여시고 약속하신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 있고, 게다가 무덤이 봉인되어 있는데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인간의 생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요 14:6).

예수님께서 길이 되신다는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로 인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롭고 살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주신 생명의 능력과 부활의 은혜와 부활의 축복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찬송가 2절)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심을 믿을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부활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과 부활의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또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주를 따라가는 자들은 욥이 열 자녀와 더불어 종들과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악창이 나서 고통을 당하며 또 세 친구들의 잘못된 조언과 아내의 핍박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찬양하며 일어섰듯이 이제 부활의 생명과 능력과 권세에 참여한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새 생명의 능력으로 무덤과 같은 삶의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믿음, 소망, 사랑의 능력을 꽃 피우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참 생명을 얻어 모든 일에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송 예화
-부활은 소망입니다 -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을 완성으로 이끄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 역사적 사건이란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결국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없는 셈입니다. 언젠가 키에르케고르는 그와 같은 생각을 부드럽고 편편한 돌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편편한 돌을 연못의 수면 위로 던지게 되면 춤을 추듯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더니 물속으로 쑥 가라앉아 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면이 잔잔해 집니다. 마치 이것은 사후의 소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호흡'이라는 희곡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막이 오르면 쓰레기가 잔뜩 어질러져 있는 무대가 등장합니다.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아기의 첫 울음 소리로 시작한 연극은 한 노인의 임종의 헐떡거림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막이 내려옵니다. 여기서 베케트가 말하고자 한 요지는 인생은 허무하고, 존재는 덧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벧전 1:3, 4). 이것은 한 마디로 소망을 의미합니다.

<참고: 인터넷 목회자정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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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 이제와 또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나와 동행하시니 나 두렴 없이 달려갑니다.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실 그날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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