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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8[토]
192장 임하소서 임하소서
찬송
성경 본문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찬송묵상
바람, 불, 생수, 기름 같은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찬송요약
1절, 마가의 다락방과 에스겔 골짜기에 임한 성령의 바람이 나의 영을 새롭게 하소서
2절, 죄악에 물든 나의 영혼을 성령의 불로 태우사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소서
3절, 생수 같은 성령의 샘물로 나의 갈한 심령 채우사 생명수가 흘러나게 하소서
4절, 방황하는 나의 육체와 심령과 영혼을 성령의 기름으로 강건하게 치유하소서
찬송해설
작사자는 서울신학교 졸업,  서울신학교 교수와 57년 성결교총회장역임, 1925년부터 국내와 만주에서 부흥목사로 활동한 김응조(金應祚;1896~1991) 목사가 1989년 작사하고, 곡은 경북 예천 출생, 계명대학교 종교음악과 및 동교육대학원 석사 현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임우상(林友相;1935~  )이 작곡하였다. 초대교회에 임하였던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21세기 부흥을 갈망하는 한국교회 위에 가득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찬송프롤로그
1절 임하소서 임하소서 바람 같은 성령이여
에스겔의 골짜기에 불어닥친 생명바람
오순절 날 다락방에 말씀으로 임하신 영
나의 영을 사로잡아 새로 나게 하옵소서

1절, 마가의 다락방과 에스겔 골짜기에 임한 성령의 바람이 나의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것입니다(요 3:5).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성서 속에서 성령의 모형을 바람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인 오순절에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행 2:2)고 했으며, 이 바람은 신비와 능력과 어떤 힘과 불가사의한 최상의(sovereignty)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겔 37장의 말씀은 바람 같은 성령에 대하여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 선지자를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는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시고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 같은 명령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에스겔은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4절) 명하자 마른 뼈들이 모여 하나가 되어 사람의 모양을 이루었지만 그 속에 생기(生氣)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9절에 다시 말씀을 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생기의 바람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하셨는데 사망을 당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몸은 있으나 그 안에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도, 생기도, 능력도 없습니다. 마치 자동차가 아무리 외모가 아름답고 엔진이 좋아도 그 차를 움직일 수 있는 힘, 즉 휘발유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처럼 습니다. 마른 뼈가 대언한 에스겔의 명령을 받고 서로 붙었지만 그 속에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른 뼈들이 결정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생기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올 때 비로소 그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고, 10절에 있는 것처럼 “곧 그들이 살아 일어나서 극히 큰 군대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 안에 생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생명 떠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모양만 갖추었다고 해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생기, 성령의 운동입니다.

여기서 '생기' 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바람' '호흡' 혹은 '영' '영혼' '성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을 때 비로소 생령(生靈)이 되어 사람이 되었습니다.(창2:7) 그러니까 마른 뼈들이 연합된 몸에 "생기가 들어갔다"는 말은 "성령의 바람이 들어갔다"는 말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바람이 죽은 뼈들을 살리게 되었고 큰 군대를 이루어 결국은 포로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인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완전히 회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쉽게 절망합니다. 어두움의 골짜기 속에서 절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흑암의 골짜기에 누워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이 에스겔 골짜기에 불어올 때에 마른 뼈들이 살아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생기의 바람 즉 성령의 바람을 국가에 주면 국가가 살아나고, 교회에 주면 교회가 살아나고, 개인에게 주면 개인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여러분의 인생에 초청하십시오. 성령님과 동행하심으로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송 예화
- 성령의 단비 -

윤 집사는 오래도록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늘 무언가에 갈급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치 빈들에 형체만 가지고 있는 말라붙은 풀 한 포기와도 같이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런 냉냉함을 달래기 위해 윤 집사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까?” 마음 깊은 한 구석에서부터 타올라 오는 갈증은 어느 것으로도 해갈될 것 같지가 않았다. 교회를 나가도 매주 반복되어지는 예배의 연속으로 밖에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더해 주지 못했다. 그는 이미 갈증을 해갈하고자 하는 강구책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 그래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유흥업소에 가서 자신을 잊을 정도로 흐느끼며 몸을 흔들어 댔다. 윤 집사의 이런 반항이 섞인 방황은 그를 더욱더 영혼의 갈증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있어서의 갈증을 느끼는 문제는 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갈증은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현대병이다. 영혼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영혼을 적셔 줄 성령의 단비를 받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들 마음의 대지에는 성령의 단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물구멍을 막아 버렸기에 이것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짧은 글 커다란 기쁨에서(채수덕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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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세상의 헛된 욕심을 내려놓고 주를 앙모하는 내안에 진리의 성령이여 임하소서. 세상에 가득한 유혹 속에 방황하는 내 영혼을 붙잡아 주시고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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