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장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 통합큐티

본문 바로가기

2015.04.23[목]
230장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송
성경 본문
눅 22:19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찬송묵상
생명의 떡과 잔 마시며 영생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요약
1절, 참되신 구주께 경배하며 정성을 다하여 찬송합니다.
2절, 생명의 떡과 잔 마시며 영생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3절, 피 흘려 내 죄 씻어주시고 소망과 평화를 얻게 하소서
4절, 주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주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찬송해설
“생명의 떡과 잔을 나누는 성찬예식에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며 구원의 은혜와 참 사랑을 온 정성을 다하여 감사하며 찬양함으로 참여합시다.”는 내용의 성찬 찬양으로  토마스 아퀴나스(T.Aquinas;1225~1274)가 작시한 것을 제임스 러셀 울퍼드(J.R.Woodford;1820-1885)가 1850년 번역하였습니다. 찬송 곡은 13세기 라틴 찬송으로 대학과 학교에서 많이 불리던 성찬 찬송입니다.
찬송프롤로그
2절 주님의 살과 피 기념하여 생명의 떡과 잔 받아먹네
내 영혼 영생 주신 주님께 온 정성 다하여 찬송합니다.

2절, 생명의 떡과 잔 마시며 영생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기독교 성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찬이요, 또 하나는 침(세)례입니다. 특별히 성찬예식의 유례는 예수님에게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조촐하게 준비된 식탁 위였습니다. 예수님과 열 두 제자가 둘러앉아서 짤막한 감사 기도를 드린 뒤에 예수께서 준비하신 떡과 잔을 나누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들로 먹고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그 날 그 만찬이 바로 오늘 저희가 지키는 성찬예식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2장 19절에서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찬예식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으로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러나 주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유념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주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행하실 때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무엇을 기념하라는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11장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 예식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구약에서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를 제물로 드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속죄가 아니었기에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하였기 때문에(14절)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므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사 53:6,벧전 2:24). 이렇듯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내 죄를 대심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대속주로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둘째,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8절에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초신자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마침 그 날이 성례주일이었습니다. 그는 큰 기대를 걸고 교회에 나왔는데, 그 이유는 인도자가 오늘 우리 교회에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큰 잔치가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까 작은 떡 하나에, 작은 포도즙 한 잔입니다. 게다가 자기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했을 때에 그가 굉장히 실망을 크게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요, 이해 곤란한 잔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찬예식은 이해 곤란의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사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피니라”(막 14:22, 마 26:28)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어찌 이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으며, 믿음이 없는데 어찌 이 내용이 자신에게 은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성찬예식은 이해 곤란의 예식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예식이요, 하늘로부터 내려온 예식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이 예식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찬143장) 찬송할 수 있게 되고, 믿음이 있어야만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은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찬143장) 감격스럽게 찬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주의 몸을 분변(分辨)해야 합니다.
성찬예식의 의미와 기쁨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떡과 잔을 받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9절에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주의 몸을 분별하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죽으심이 흔하게 있는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여기 떡이 무엇인가요? 24절에 예수님께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잔은 무엇입니까? 25절에 예수님께서 "이 잔은 내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자만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참여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만찬 식을 행할 때마다 하늘나라에 참여할 자로 살고 있는가? 자신을 분변하며,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생명의 떡과 잔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영혼 영생주신 주님께 온 정성을 다하여 찬송하며”(찬송가 2절)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 예화
성찬의 공동체

우리 시대의 영성작가인 고 헨리 나우엔은 그의 명저인 "나의 사랑하는 자요"라는 책에서 그의 유대인 친구에게 우정의 편지를 쓰면서 성찬식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고 설명합니다. 본문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날밤 소위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장면에서 복음서의 기자는 네 개의 의미심장한 동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가지사(take/took) 2)축복하시고(blessed) 3)떼어(broke) 4)주셨다(gave)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 네 개의 동사를 근거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1)선택받은 자 2)축복받은 자 3)상처받은 자 4)나누어주는 자라고 선언합니다.
성찬식은 이런 우리의 정체성(우리가 누구인가?)을 확인하는 자리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철저하게 성찬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관련 찬송
주 앞에 성찬 받기 위하여 227장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228장
우리 다 같이 무릎 꿇고서 231장
오늘의 기도
떡과 잔을 마실 때 마다 주님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보혈의 능력 안에 잠기기 원합니다. 거룩하신 예수의 생명으로 충만케 채우시고 구별된 백성으로 더욱 강건케 하소서.

본문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찬양큐티란?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www.everprais.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