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장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327장)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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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수]
538장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327장)
찬송
성경 본문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찬송묵상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마음 문 열어놓고 구주를 영접하라
찬송요약
1절,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마음 문 다 열어놓고 구주를 영접하라
2절, 생명수로 정결케 되기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구주를 영접하라
3절, 진실한 친구와 참 평안을 원하거든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4절, 즐거운 찬송을 부르면서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찬송해설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의 찬송을 작시․작곡한 레리아 네일러 모리스(L.N.Morris;1862-

1929) 여사는 미국 태생의 감리교 평신도로서 그의 생애에 1,500여 편의 많은 찬송 시를 썼는데 그녀는 대부분의 찬송을 자신이 직접 작시․작곡 하는 그런 실력가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찬송가에도 349장 ‘나는 예수 따라가는’ 찬송 외에도 6곡의 찬송이 더 실려 있다. 이 찬송은 1898년 미국 메릴랜드 주의 ‘마운틴 레이크 파크’에서 캠프집회가 열렸을 때 모리스 여사는 이 집회의 주최측 안내요원이 되어 초신 자들의 결심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설교자는 유명한 부흥사인 '베이커'목사님 이셨는데 주일날 아침에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 '베이커'목사의 설교에는 능력이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때에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는 하고 있었으나 결심에 대한 갈등으로 인하여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모리스 여사는 그녀에게 다가가 함께 기도하며 “부인! 무엇을 주저하십니까? 지금이 예수님을 영접할 절호의 기회입니다.”고 말하는데 강단에서도 똑같이 “바로 이때입니다. 지금이 우리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할 바로 그때입니다.”하고 외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더욱 몸부림치며 괴로워하였다. 이때 모리스 여사는 그녀의 손을 다시 어루만져주며 “자! 이제 당신의 무거운 죄의 짐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도록 영접하시지요, 그러면, 당신은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하며 권면할 때에 그녀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한 얼굴로 강단 밑으로 나가 결신자 대열에 섰다. 이 집회를 마치고난 후 모리스 여사는 자신이 그 여인에게 권고하던 일을 회상하며,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라.”는 538장의 찬송을 만들어 내놓게 된 것이다.
찬송프롤로그
1절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1절,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마음 문 다 열어놓고 구주를 영접하라

우리 인간들은 복잡한 사회구조와 귀중한 업무로 인해 육체적 피곤과 정신적 갈등이날마다 쌓여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한 각종 정신질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치 못하여 각종 질병과 사회악이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정신적 고통을 안은 채 고뇌와 번민과 죄악가운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부름을 외면한 채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쾌락에 빠져서 권력이 가져다주는 힘의 자랑에 빠져서 명예욕에 빠져서 그런 것들이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을 지켜주고 가져다줄 줄로 알고 오늘도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세상으로 끝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던 자 중에 성경에 보면 ‘삭개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세리 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얼마를 로마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하였습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향하여 도둑놈, 아첨 배, 강도, 역적, 매국노, 개만도 못한 놈하며 놀려대었지만 그래도 돈 많 있으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신념하나로 버티며 오직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다시 말해 물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마음만 강퍅해질 뿐 어느 것 하나 참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맛볼 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붙잡혀 ‘저 매국노를 잡아 죽여라’ 하며 언제 몰매를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속에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억눌림 속에 살아가던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을 만나고자 여리고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작은 키로는 도저히 그 분의 얼굴을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꾀를 내어 뽕나무에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면서까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그 근본동기가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삭개오는 늘 자신이 남의 눈과 입에 매국노로, 돈 만 아는 철면피로, 다른 사람의 세를 갈취하는 도둑놈으로만 보이기에 어떻게 하면 이 같은 불명예와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참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는 말씀이 생각나서 과연 저가 어떤 자이기에 쉼에 대해서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만일 내가 그 분을 뵙게 된다면 나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무거운 죄의 짐을 다 털어놓고 마음의 참 평강을 얻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삭개오는 자신의 소원대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처럼 반기며 “삭개오야 !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 삭개오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송구스러움과 아울러 어떤 해방감과 같은 영적 기쁨이 자신의 내면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이 물질에서부터 온 것을 너무나도 잘아 는 삭개오로서는 과감하게 결단의 선언을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19:8)며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대한 삭개오의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지금까지 주관하던 것은 오직 물질하나였습니다. 물질 하나에만 소망을 두고 살았는데 그것이 참된 만족과 위로를 주지 못하는 반면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는 짤막한 말씀 속에서 그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따뜻한 사랑과 인간애를 느끼며, 이 같은 결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나사로’ 이제는 과거의 짐에 억눌려 방황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을 영접하므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되었고 죄에서 영원히 해방을 받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죄의 옛사람은 죽고 의의 새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자유함을 맛보며 영원한 은혜 속에 기쁨을 누리며 사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라면 그러한 모든 것을 이 시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참 기쁨이 되시며 참 만족이 되시며 영광이 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알 수도 세상이 줄 수도 없는 참된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영적 기쁨을 누리며 주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주님의 새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미국의 댈러스 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큰 터랙트를 몰고 시내에 나타났습니다. 아이가 잘못 핸들을 돌리면 길옆의 사람이나 차를 받을 뻔한 위험천만한 상항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경찰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달려와서 지나던 차들은 모두 멈추었습니다. 트랙터를 세우고 무슨 영문인가 확인해 보았더니 사실은 어린 아이가 트랙트를 운전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아빠가 어린 아이를 어깨에 태워 트랙터를 운전하고 있었던 것인데 마치 어린이가 운전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치 우리가 각자 인생의 핸들을 잡고 운전 하는 줄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핸들은 아버지 하나님이 잡고 계십니다. 그것을 시인할 때 우리 인생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55:22)라고 노래하는 것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폭 적으로 순종하게 하옵소서. (참고: 인터넷 목회자 정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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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예수님 나의 모든 짐을 주 앞에 내려놓습니다. 지금 내안에 오소서 날 다스려 주소서.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주님과 교제하며 하늘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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