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462장)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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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월]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462장)
찬송
성경 본문
마 8: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찬송묵상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찬송요약
1절,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2절, 큰 물결이 배를 위협하며 입 벌려 달려드나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3절, 큰 소리로 물결을 명하시니 바다는 즉시 고요히 잠자니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찬송해설
에이다 블랭코론(A. Blenkhorn)이 작시하고 닉켈(W.S.Nickel)이 작곡한 찬송이지만 작사자 작곡자 모두 알려지지 무명의 사람이다. 본 찬송은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였으며 특별히 마태복음 8장 23-27절에 나오는 말씀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한 배에 탔음에도 불구하고 큰 풍랑을 만나 좌초될 위기에 도달하자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 불안감속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를 구원하소서” 간청할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신 후에 파도를 꾸짖어 잔잔케 해주셨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으나 실상은 제자들이 당황하고 있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에서도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속에서 당황하며 불안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나약성과 제한성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주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보호자와 구주가 되심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부딪히게 되는 한계상황 또는 파라독스를 보게 됩니다. 즉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설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한계 상황에 예수는 구원자로, 인도자로 인간 역사에 깊이 참여하시며 돕고 계신 것이다.
찬송프롤로그
2절 큰 풍랑이 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 입 벌려 달려드나
이 바다에 노 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 사공은 주님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2절, 큰 물결이 배를 위협하며 입 벌려 달려드나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마태복음 14장 22-33절은 오늘 본문 마태복음 8장 23-37절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를 가지고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조각 열두 바구니를 거두는 기적을 행하신 후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신 후에 제자들끼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다가 밤 사경에 큰 풍랑이는 파도를 만나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급히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는가? 그리고 왜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는가? 그리고 아무리 큰 풍랑과 파도로 인하여 물체를 잘 분간할 수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보고서 어찌하여 유령이라 하였을까? 참으로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실 이 갈릴리 바다는 지면의 땅보다 약 200m 정도 낮은 곳에 있기에 이런 기상변화가 잦고 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배에 탄 사람들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노를 젓고 바람의 방향이 어떤지를 알고 배를 조정해 가는 데는 이들을 따를 사람이 없을 만큼 전문가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풍랑을 만나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뱅뱅 맴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왜 배의 방향을 그 쪽으로 돌리느냐? 부터 시작해서, 돛대를 올려라 아니다 내려야 한다. 노를 빨리 저어라, 아니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물건을 바다위로 던져라 하며 많은 실랑이를 버렸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 상황은 엉망진창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배에 대한 지식과 갈릴리 호수에 대한 지식 그리고 어부로서의 가진 경험들이 그들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분들이 가진 그 지식 때문에 더 힘들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수습하려고 하는 여러분들의 수단과 노력과 방법 때문에 오히려 여러분들의 그 문제를 더 어렵게 하고 더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제자들의 상황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조금 전 저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하고 제자들 나름대로 “우리가 모신 예수님이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저분을 믿고 따르면 우리도 큰 축복과 대접과 섬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는 긍지와 자부심과 교만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장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과 힘을 의지하며 항해하였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9년 한해를 시작함에 있어서 “지난 2008년의 성공한 사업의 노하우, 실패한 경험, 쌓은 지식과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나가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그 사업에 예수님이 동행하시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사공으로 일하시도록 내어드리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어느새 또 다시 사업에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뱅뱅 맴도는 제자들처럼 사업에 좀처럼 희망이 없는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내 인생 항해의 사공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공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신 후 당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백성들을 피하여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다 뒤로한 채 엎드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항해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분명한 것은 나의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철저하게 사공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제 아무리 “큰 풍랑이 배를 위협하며 저 깊은 물이 입 벌리고 달려들어도 주 예수님이 이 배의 사공인지라 우리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비록 흉흉한 파도를 항해 중에 만난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저 소망의 나라에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찬송가 2절)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사공으로 모시지 아니하면 풍랑을 만나 언제 어떤 모습으로 좌초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구원자 예수님, 인도자 예수님, 보호자 예수님을 피부적으로 가까이 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위험과 환란 중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싶어도 그분을 유령으로만 알고 좀처럼 받아드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함 속에 예수님께서 “진실로 우리를 도와주시며 우리를 승리케 하시며 축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14:33)고백하며 주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사공으로 모시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므로 2009년도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귀한 승리의 열매, 축복의 열매, 성령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 풍랑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삶의 명제가 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명제는 예수그리스도로 충족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벳세다 들녘의 무리를 보내는 동안 제자들을 배에 태워 앞서 건너가게 하신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소원하신다. 추앙받고 영광 받는 일은 누구나 원하지만 거기에는 내일의 희망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야 한다. 틀에 박힌 생활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성공을 원한다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데 있다. 바다에 풍랑이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이 풍랑이 결코 공포의 대상일 수 없는 것은 풍랑 속에 예수가 찾아와 계시기 때문이다. <참고: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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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지금 내 주변에 일어나는 험판 파도와 폭풍 중에 내가 누구를 의지하며 살 수 있으리이까? 내 삶을 붙드시고 이끄시는 내 생의 주인 되신 예수님만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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