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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6[일]
594장 감사하세 찬양하세
찬송
성경 본문
시 104: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찬송묵상
삼천리강산에 풍년을 허락하신 하나님
찬송요약
1절, 주를 믿는 성도들아 복의 근원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라

2절, 삼천리강산에 오곡백과 풍년을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라

3절, 알곡을 거둬들일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라
찬송해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풍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주를 믿는 자들아 하나님께 소리 높여 감사하세"의 감사절 찬송은  40년간을 예성교회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였던  박정아(1940~  )권사가 1996년에 작시하였으며, 찬송 곡은 경희대학교교육대학원 음악교육을 전공하고 광주교육대학교 김은석(金恩石;1932~  )교수가 작곡하였다. 특별히 매 1절과 3절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에 "감사하세 찬양하세",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세"함을 통해 풍물놀이와 꽹꽈리를 치며 조상신에 경배하는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으려는 작시자의 강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절에서는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2절에서는 오곡백과 풍년을 허락하신 하나님, 3절에서는 알곡을 거둬드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찬송프롤로그
1절
감사하세 찬양하세 주를 믿는 성도들아
하나님이 복을 주사 가난한 우리도 풍성하네
할렐루야 찬송하세 창조주 하나님 감사하세
오곡백과가 풍성하니 하나님께 감사하세



찬송가 1절의 핵심은 "주를 믿는 성도들아 복의 근원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민족이 지키고 있는 풍년의 모습을 전래 민요인 풍년가[豊年歌]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920년경 "풍년이 왔네"로 시작하는 경기도 민요인 풍년가를 <길타령〉․〈사절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풍년가의 가사입니다.


풍년가[豊年歌]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후렴)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구나/명년 춘삼월에 화류놀이 가자/
올해도 풍년 내년에도 풍년/연년 연년이 풍년이로구나
(후렴) 지화 좋다 얼씨구나 좀도 좋구나/명년 하사월에 관등놀이 가자"



전래 민요를 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렴의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연에 따라 춘삼월에 화류놀이, 하사 월에 관등놀이, 구시월에 단풍놀이, 동지섣달에 설경놀이 등으로 바꾸어 불러 이 노래를〈사절가〉라고도 했는데 모두가 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으로 풍년의 기쁨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또 후대를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곡식을 저장하고 나누는 미덕보다는 그저 먹고 마시는 타령뿐인 것을 봅니다. 이러니 이 민족의 장래가 어떠하였겠습니까? 이점을 안타까워한 작사자가 “주신 알곡 나눠주며 거둬들인 알곡 안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세, 오곡백과가 풍성하니 하나님께 감사하세“라고 외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농촌 사람들은 추수를 마치고 나면 가을 단풍놀이로 고속도로와 여행지를 수놓고 있다. 물론 씨 뿌린 알곡을 수확하기까지 한 해 동안 힘들여 고생한 수고로움을 달래기 위한 한풀이로 생각하지만 관광버스에서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남녀노소가 춤을 추는 모습은 위험천만은 물론 여행지에서의 추태도 여전히 발견되어지고 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주를 믿는 성도들마저 이 같은 행렬에 끼어 “니나노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다”하며 춤추며 노래 부르고 있으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딱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 믿지 않음으로서 사단의 권세 하에 사로 잡혀 사단의 소유로 있거나 아니면 예수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단의 소유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결과는 사망이요 영원한 죽음뿐입니다(롬 6:23).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엔 사단의 자식이요 어둠의 진노에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제물로 드림으로서 우리를 죄악의 소굴에서 죽음에서 건지시고 축복의 자녀, 생명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이 귀한 생명과 자연과 소산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종 관계가 끊어졌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상태가 아닐 것입니다.



감사란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란 물질의 소유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감사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아서 많이 하는 것이 아니며 받은 물질이 적어서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으로 감동이 되어서 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문제는 믿음이 문제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물질로 인해 타락의 세계로 빠져 들뿐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물질의 소유를 늘리는 것 보다 먼저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해마다 맥추감사절에 하나님께 좋은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이란 한 해의 수확을 끝낸 기쁨 속에서 그 수확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께 기뻐하며 감사를 드리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것은 오직 여호와께로만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심정으로 일상의 모든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재무장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맥추감사절에 성도들이 드려야 할 참된 예물은 물질의 예물보다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의 열매, 그리고 영혼 전도의 열매(요 15:2)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맥추감사절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 드리는 기쁨 -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헌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주재권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월터 A. 헨릭슨의 ‘훈련으로 되는 제자’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 기쁨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참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로 인해 맺은 삶의 풍성한 열매를 다시 주께 돌려드릴 때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자 주님의 참된 제자로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에 머무는 것이 아닌 드리는 기쁨으로 매일의 삶을 채워 가십시오. 이 땅에 주의 나라를 세우는 놀라운 역사 가운데 우리의 달란트가 귀히 쓰이길 소망합니다.


<참고: CTS 새벽종소리>
관련 찬송
나의 생명 드리니 213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18장

충성하라 죽도록 333장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지으심을 따라 영과 혼과 육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 합니다. 풍성함 속에서 상대성의 빈곤을 밟고 절대성의 충만함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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