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96장) > 통합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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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목]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96장)
찬송
성경 본문
요 1:9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찬송묵상
이 세상의 참 빛은 오직 예수뿐
찬송요약
1절, 온 세상이 캄캄 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영광의 주 밝은 빛 비추셨네.
2절, 주 말씀을 믿고 주 명령을 행하는 자 그 맘이 시원하고 그 길이 환하네
3절, 죄 가운데 사는 자 그 눈이 어두워도 영광의주 뵈올 때 그 눈이 밝아지네
찬송해설
요 1:9절 말씀을 배경으로 오직 예수 안에 거할 때만 영생과 참 빛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빛으로 찾아오셔서 어두움 가운데 신음하는 자들의 참된 위로자와  인도자가 되어주셨다. 후렴에 ‘영광’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그 빛에 속한 자 만이 영광의 주를 뵙고 영광의 주를 찬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작사․작곡자 모두 불명이다.
찬송프롤로그
1절 온 세상이 캄캄 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상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내게 비추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님

1절, 온 세상이 캄캄 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영광의 주 밝은 빛 비추셨네.

찬송가 1절에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나타나 온 세계 비치었네.”로 찬양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는 누구를 가르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 호세아 6장 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새벽 빛 같이 임하는 여호와”, 동방방사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큰 별을 보고 따라 왔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 2:2). 그리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그 마음속에 영접하고 받아드리면 우리 속에 그런 믿음․소망․사랑(고전 13:13)의 역사가 흘러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생명의 능력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어두움 세력, 멸망의 세력인 사단을 좇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로, 감출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4-15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빛은 숨길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빛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노출하는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중해 연안이나 프라하의 도시에 가보면 높은 산 언덕위에 아름다운 도성들이 자주 눈에 뛰게 되는데 밤에는 휘황찬 불빛에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항상 노출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크리스천으로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서 어두움에 속한 부정적인 모습을 몰아내고 아름다운 생명의 빛, 소망의 빛으로 거듭나도록 힘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빛은 어둠을 밝혀 주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고,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모든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을, 좋고 나쁜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어두움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어두움이 이 세상을 덮고 완전히 빛이 없는 상태가 삼일동안 지속된다면 아마도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비될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면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정체가 있는 그대로 밝혀지고 어둠이 폭로 됩니다. 이처럼 빛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실체를 바르게 알게 할뿐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마 5:14)이라고 말하며, 바울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라고 말하는 것은 낮에 자녀로서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혀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빛, 생명의 빛, 은혜의 빛, 사랑의 빛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빛은 사람들을 깨우고 활동하게 하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활동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사람들이 잠을 자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자라날 어릴 적에는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해가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다시 해가 동녘에 뜨면 일찍이 일을 하러 들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 사람들은 전등의 밝은 빛 덕분에 어느 시간에든지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활동을 하고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빛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깨우고 활동하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고 뭔가를 향하여 움직이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이라고 하는 어둠의 그늘에서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이 세상을 깨워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표상이 되는 것이 바로 교회된 우리의 속성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마치 캄캄한 바다위에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등대를 높이 세워서 배가 가야할 길을 바르게 비춰주는 것과 같이 어두운 세상에 교회는 진리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그 빛나는 영광”(찬송가 1절)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예화


집 안에서 화초를 기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느 성도의 집에 가보니 집 안 전체에 싱그러운 화초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 집 화
초들도 잘 자라고 있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잎에 윤기가 반지르르 흐른다. 화초를 키우면
서 바꾼 것은 한 가지, 남향집으로 이사한 것이다. 남쪽으로 탁 트인 베란다를 통해 겨우내 따뜻한 햇살이 흠뻑 들어와 화초들을 비춰준 것이다. 따뜻한 햇살,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
었다. 인디언의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해가 어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자, 별이 해를 데리고 아주 컴컴한 굴로 갔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마자 어둠은 완전
히 사라졌고, 별은 해에게 흑암을 보여줄 수 없었다고 한다. 해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어
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된다. 다만 그 햇빛이 가려지는 곳에 어둠이 깃들 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참 빛이시다. 그 빛이 비치는 곳에 모든 어둠은 사라질 것이다.
이광호 목사(도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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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버려진 인생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그 가운데 살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빛 가운데 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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