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포기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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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찬양하는삶 작성일26-10-23 10:06 조회1회 댓글0건본문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돼!
고린도후서 4:7–12
2026년 10월 25일 주일 · 늘찬양교회
들어가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 보면 “이제는 더 못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병이 낫지 않고, 일터가 흔들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웃어도 혼자 있을 때 눈물이 흐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말씀드립니다. 힘들면 울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이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이 난다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쉬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도 포기가 아닙니다.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돼!”라는 오늘 제목에는 이런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혼자 끝이라고 결론짓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보배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직접 겪은 사람입니다. 박해를 받고 생명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은 쉽게 깨질 수 있는 그릇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도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도 병들고 실패하며 지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복음의 빛과 주님의 생명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치는 건강이나 성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에 귀합니다.
다시 일어설 힘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내 힘이 다했다고 하나님의 능력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고난 속에서 붙든 네 가지 말씀을 함께 붙들기 원합니다.
첫째,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경제적인 문제에 몸의 아픔까지 겹치면 사방에서 눌려오는 것 같습니다. 바울도 그 압박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가두어 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심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를 보십시오.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다가옵니다. 백성의 눈에는 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외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나님은 홍해 가운데 길을 내시고 백성을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지금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하나님께도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길은 문제의 해결로 열릴 수도 있고, 함께 짐을 질 사람을 만나는 모습으로 열릴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걸음을 찾으십시오. 도움을 요청하고, 해야 할 연락을 해 보십시오. 막힌 자리에서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둘째,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8절은 계속 말씀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기도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손해를 보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모든 답을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아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주님은 그를 고치시고 “딸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병으로 고통받던 한 사람에게 평안과 존엄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모든 병이 곧바로 낫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픈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치료를 계속 받으며 기도하십시오. 마음이 지칠 때에는 믿음의 동역자와 전문가의 도움도 받으십시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 짧은 기도도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셋째,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함께하던 사람이 떠나고 내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님의 마음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외면당한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지만, 성경은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한 자리에서 거절당했다고 여러분의 인생 전체가 거절당한 것은 아닙니다. 아파서 이전처럼 일하지 못해도 여러분은 여전히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눈 위의 발자국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힘든 때 발자국이 한 줄뿐이어서 “왜 저를 혼자 두셨습니까?”라고 묻자, 주님께서 “그때는 내가 너를 안고 걸었단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사건은 아니지만 주님의 돌보심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 사랑을 전합시다. 이야기를 들어 주고, 병원에 동행하며, 서로의 짐을 함께 집시다.
넷째,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9절 끝부분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넘어지는 일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하나님의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사업이 반드시 성공하고 잃은 것을 모두 되찾는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고난과 죽음조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과 소망을 없애지 못한다는 복음입니다.
10절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의 삶에서도 생명의 일을 행하십니다.
회복은 작게 시작되기도 합니다. 일어나 식사를 하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다시 “주님”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리다고 자신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고난 가운데서도 다른 이들에게 생명이 전해진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상처도 주님의 손 안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충분히 돌보고 함께 기다릴 때 주님께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 근거는 우리 안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쉬어도 괜찮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꼭 손을 내미십시오. 삶을 끝내고 싶을 만큼 괴롭다면 그 마음을 혼자 품지 말고 지금 곁의 사람에게 알려 주십시오. 함께 안전을 지키고 필요한 도움을 찾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소중한 분입니다.
오늘의 결단은 주님께 형편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도움을 줄 사람에게 연락하며, 가능한 작은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믿음은 넘어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 안에서 서로를 붙들며 다시 걸어가는 늘찬양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치는 기도
주님, 연약한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도 주님께 손을 내밀게 하소서. 지친 성도에게 쉴 자리와 도울 사람을 보내 주시고, 우리 교회가 서로의 짐을 함께 지게 하소서. 오늘 가능한 작은 걸음부터 다시 내딛도록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4:7–12
2026년 10월 25일 주일 · 늘찬양교회
들어가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 보면 “이제는 더 못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병이 낫지 않고, 일터가 흔들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웃어도 혼자 있을 때 눈물이 흐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말씀드립니다. 힘들면 울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이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이 난다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쉬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도 포기가 아닙니다.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돼!”라는 오늘 제목에는 이런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혼자 끝이라고 결론짓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보배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직접 겪은 사람입니다. 박해를 받고 생명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은 쉽게 깨질 수 있는 그릇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도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도 병들고 실패하며 지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복음의 빛과 주님의 생명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치는 건강이나 성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에 귀합니다.
다시 일어설 힘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내 힘이 다했다고 하나님의 능력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고난 속에서 붙든 네 가지 말씀을 함께 붙들기 원합니다.
첫째,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경제적인 문제에 몸의 아픔까지 겹치면 사방에서 눌려오는 것 같습니다. 바울도 그 압박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가두어 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심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를 보십시오.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다가옵니다. 백성의 눈에는 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외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나님은 홍해 가운데 길을 내시고 백성을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지금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하나님께도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길은 문제의 해결로 열릴 수도 있고, 함께 짐을 질 사람을 만나는 모습으로 열릴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걸음을 찾으십시오. 도움을 요청하고, 해야 할 연락을 해 보십시오. 막힌 자리에서도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둘째,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8절은 계속 말씀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기도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손해를 보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모든 답을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아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주님은 그를 고치시고 “딸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병으로 고통받던 한 사람에게 평안과 존엄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모든 병이 곧바로 낫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픈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치료를 계속 받으며 기도하십시오. 마음이 지칠 때에는 믿음의 동역자와 전문가의 도움도 받으십시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 짧은 기도도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셋째,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함께하던 사람이 떠나고 내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님의 마음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외면당한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지만, 성경은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한 자리에서 거절당했다고 여러분의 인생 전체가 거절당한 것은 아닙니다. 아파서 이전처럼 일하지 못해도 여러분은 여전히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눈 위의 발자국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힘든 때 발자국이 한 줄뿐이어서 “왜 저를 혼자 두셨습니까?”라고 묻자, 주님께서 “그때는 내가 너를 안고 걸었단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사건은 아니지만 주님의 돌보심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 사랑을 전합시다. 이야기를 들어 주고, 병원에 동행하며, 서로의 짐을 함께 집시다.
넷째,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9절 끝부분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넘어지는 일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하나님의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사업이 반드시 성공하고 잃은 것을 모두 되찾는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고난과 죽음조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과 소망을 없애지 못한다는 복음입니다.
10절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의 삶에서도 생명의 일을 행하십니다.
회복은 작게 시작되기도 합니다. 일어나 식사를 하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다시 “주님”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리다고 자신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고난 가운데서도 다른 이들에게 생명이 전해진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상처도 주님의 손 안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충분히 돌보고 함께 기다릴 때 주님께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 근거는 우리 안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쉬어도 괜찮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꼭 손을 내미십시오. 삶을 끝내고 싶을 만큼 괴롭다면 그 마음을 혼자 품지 말고 지금 곁의 사람에게 알려 주십시오. 함께 안전을 지키고 필요한 도움을 찾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소중한 분입니다.
오늘의 결단은 주님께 형편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도움을 줄 사람에게 연락하며, 가능한 작은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믿음은 넘어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 안에서 서로를 붙들며 다시 걸어가는 늘찬양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치는 기도
주님, 연약한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도 주님께 손을 내밀게 하소서. 지친 성도에게 쉴 자리와 도울 사람을 보내 주시고, 우리 교회가 서로의 짐을 함께 지게 하소서. 오늘 가능한 작은 걸음부터 다시 내딛도록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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